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 디박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현역 시절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등 '''[[4대 센터]]'''를 비롯해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브래드 도허티]] 같은 특급 센터들이 득실득실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았지만, 센터로써 충분한 경쟁력을 보였던 선수이다. 신장 216cm와 몸무게 120kg의 체격을 살린 힘, 거기에다 능숙한 포스트 플레이와 함께 팀 동료에게 공을 패스하는 센스도 뛰어났던 선수. 보드 장악력 또한 준수해서 90년대 센터들의 전성기에 세 차례 시즌 더블-더블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함께 동유럽을 대표하는 센터였으며 유러피언 빅맨 답게 부드러운 움직임과 뛰어난 패싱 센스가 돋보였다. 밀레니엄 킹스 시절에는 [[NBA 매니아]]의 일부 유저들이 그를 두고 '''포인트 센터'''[* 이런 유형의 선수를 컨트롤타워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정식명칭은 아니다.]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시야가 좋고 센터답지 않은 패스를 보여줬다. 또한 드리블 실력 역시 센터치고 매우 뛰어나서 간혹 볼운반을 맡기도 하는 등 동시대 센터들과는 이질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위에 언급한 포스트업, 패스, 드리블 외에도 골밑 수비, 리바운드 등 농구에 필요한 기술들이 전체적으로 탄탄했던, 농구를 알고 하는 기술자형 선수. 이 선수의 불운을 보여주는 이력이 바로 '''만 33세이던 01시즌에 첫 올스타가 됐다는 점'''이다. 전성기 끝물에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지만, 정작 전성기 때는 위의 괴물들 때문에 좌절되었다. 사실 당시엔 레전드 센터인 [[패트릭 유잉]]이 MVP 투표에서 5위에 들고도 서드팀에도 꼽히지 못한 시즌이 있을 정도로 센터포지션의 스타 뎁스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만약 디박이 센터 뎁스가 떨어지는 2000년대~2010년대 중후반에 활약했다면 수상 기록이나 올스타 선정 횟수가 꽤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뎁스를 떠나 수상이나 올스타 경쟁에서는 경쟁력이 비교적 약한 축에 들어가는 선수이기도 했다. 시즌 커리어하이 득점이 16점에 그치며 그 외엔 평균 15득점을 넘긴 시즌이 없고[* 커리어 평균으로는 12점 가량에 그칠 정도로 득점력은 별볼 일 없었다.] 준수한 포스트업에 나름 중거리 슛도 가졌지만 적극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득점에서 높은 볼륨을 보장해주는 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리바운드 두자릿수를 기록한 시즌도 3시즌 뿐이라 사이즈 대비 좋다고 보긴 어려웠다. 당대 센터들 중 최상급으로 분류되던 패싱스킬 역시 어시스트 수치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는데, 이는 득점 기회를 찔러주는 A패서라기 보단 [[모션 오펜스|팀 오펜스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윤활유같은 플레이]]에 능한 타입이었기 때문. 이렇듯 탄탄한 기본기와 BQ로 득점, 패스, 리바운드, 수비 등 농구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준수하게 잘 해내는 선수였지만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가 아주 특출나진 않았고[* 물론 시야와 패싱 스킬만큼은 4대 센터 이상이었다.], 전체적인 스탯볼륨도 비교적 평이한 편이었다. 물론 당시 리그에 우글거리던 엘리트 센터 중에는 약한 편에 들어갔지만, 하나 감안해야할 것은 디박은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더불어 그 위력이 스탯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선수였단 점이다. 사보니스도 마찬가지로 의외로 스탯이 괴물같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고, 사보니스가 "[[데이비드 로빈슨]]에게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 [[1988 서울 올림픽]] 당시에도 스탯이 13점 13리바운드에 불과했다. 두 선수 모두 센스가 좋아서 수비력이 좋았지만 NBA시절 기준으로 블럭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고, 시야가 넓고 패스센스가 뛰어나서 팀오펜스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의외로 어시스트 수치가 아주 높진 않았다. 물론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사보니스의 전성기는 NBA 입성 전이었고 전성기의 그는 당연히 디박을 상회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사보니스가 느려지고 기량이 저하되어 NBA에서 뛸 당시에도 출장시간의 한계로 올스타는 되지 못했지만, 코트에서 뛰는 시간만큼은 확실히 올스타급 기량이었다. 실제로 디박이 약간 더 좋긴 하지만 NBA에서 둘의 스탯라인은 상당히 유사하게 뽑혀나오는 편이다. 포인트는 그가 볼륨스코어러나 강력한 리바운더는 아니었을지언정, 코트 위에서 올스타급 공헌도를 할 수 있는 선수였으며 당대에도 그 기량을 충분히 인정받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전성기는 16점 10.4리바운드 2.2블럭 4.1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를 보낸 1994-95 시즌으로, 리빌딩 레이커스가 새로운 쇼타임으로 부활한 시점이었다. 이때 부활한 팀성적 덕으로 세드릭 세발로스만이 올스타에 선정되었는데(커리어 유일한 선정), 사실 이때 둘의 성적으로 보면 디박이 모자랄 것이 없다. 득점은 세발로스가 크게 앞서지만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 등 다른 부분에서 모두 디박이 앞서고, 둘은 경력이나 나이 면에서 비슷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1994-95 시즌~1995-96 시즌은 1990년대 중에서도 센터뎁쓰가 비정상적으로 두꺼운 시절이었다. 2시즌 연속으로 MVP 상위 5명 중 4명이 센터였을 정도[* 실제로 당시 서부에선 [[하킴 올라주원]]이 주전, [[데이비드 로빈슨]]과 [[디켐베 무톰보]]가 백업으로 나왔는데 제독과 하킴은 MVP 투표 각각 1위와 5위였으며, 무톰보는 DPOY였다. 이 정도면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없는 라인업. 1995-96 시즌에도 저들 셋이 그대로 나왔다. 1996-97년에는 디박이 동부로 왔더니 무톰보가 같이 동부로 와서(...) 또 밀렸다.] 사실 그래서 2000-01시즌에는 전성기가 지났는데도 반대로 얕아진 센터뎁스와 좋은 팀성적 덕분에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정리하자면 디박은 4대센터처럼 매년 당연하게 올스타에 뽑힐만한 레벨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성기가 다 지나서 센터기근 틈타서 딱 한번 올스타에 뽑힐 만큼 애매한 선수도 아니었다. 디박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인기가 없었지만 감독추천으로 올스타 게임에 기웃거릴만한 선수였고, 감독들은 대부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미친 센터뎁쓰만 아니었다면 레이커스가 부활한 1994-95 시즌~1995-96 시즌 정도는 확실히, 상황에 따라 그 이상도 노려볼만한 선수였다. 실제로 4회 올스타인 [[빌 레임비어]]와 디박은 각기 시대에서 위상이 비슷했으며[* 물론 레임비어는 볼륨스탯이 더 좋고 디박이 더 다방면에서 공헌한다는 차이가 있다.], 디박의 커리어는 대충 커리어 3~5회 정도 선정된 올스타들과 비슷하다. 특기할 점은 덩치가 대단히 크고 힘이 센 선수임에도 [[헐리웃 액션]]의 최고봉이라는 점이다. 보통 이런 헐리웃 액션을 자주하는 선수들은 언더사이즈인데 디박은 [[샤킬 오닐]]이나 사보니스 정도를 제외하면 피지컬적으로 크게 밀리는 선수가 없었음에도 헐리웃을 매우 즐겼다. 이 때문에 오닐은 디박의 플레이스타일을 매우 싫어했고, 킹스와의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욕을 했다가 벌금을 물었다. 우연일 수 있지만 디박이 거쳐간 팀들은 (말년에 거의 못 뛴 레이커스를 빼면) 디박이 합류하고 팀이 본 궤도에 올랐다가 그가 떠나면 흔들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으로 레이커스를 떠나 샬럿으로 이적했을 당시 [[샬럿 호네츠]]는 이전 시즌(1995-96시즌) 에이스 [[알론조 모닝]]이 떠나고 새 에이스 [[글렌 라이스]]가 들어오면서 41승으로 플레이오프 실패했으나, 디박이 처음 합류한 1996-97 시즌엔 오프시즌에 원투펀치였던 [[래리 존슨]]을 잃은 상태로 맞이한 시즌임에도 54승이나 가뒀다. 1997-98 시즌에도 51승(승률 .622)를 했으나, 그가 떠난 1999 시즌엔 플레이오프 탈락한다.[* 물론 이건 디박 뿐 아니라 에이스 글렌 라이스가 이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킹스에서는 새로운 에이스 [[크리스 웨버]]와 동시에 합류해 전 시즌까지 바닥권(승률 .329)이던 팀을 승률 54%[* 승률로 하는 이유는 단축시즌이었기 때문에 승률은 올랐으나 승수 자체는 똑같아 혼동할 수 있기 때문. 정확히 말하면 27승 55패에서 한 시즌만에 27승 23패가 되었다.]로 올렸다. 그러나 2004 오프시즌에 디박이 떠난 이후 킹스는 우승후보권에서 내려오며 같은 시즌 내에 웨버가 이적, 다음 시즌에 [[페자 스토야코비치]]까지 떠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디박은 기량도 기량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라커룸 리더로서 역할이 컸다. 디박은 유럽 출신으로서 가장 먼저 NBA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 중 하나였으며, 그 외 선수들에게도 베테랑으로서 신뢰가 두터웠다.[* 실제로 디박은 2000-01 시즌부터 킹스를 떠날 때까지 항상 팀의 최연장자였다. 또한 버논 맥스웰, 타이론 코빈, 빌 웨닝턴처럼 은퇴하기 전 잠깐 한 시즌씩 뛴 선수들을 제외한 실질적 전력들 사이에선 킹스 유니폼을 입은 기간 내내 가장 연장자였다.] 오히려 팀 주장이었던 웨버는 그동안 사고를 많이 쳐서 신뢰를 잃은 것도 있고, 페자를 공개적으로 디스하기도 했다. 특히 킹스에서 디박의 역할은 더욱 컸는데, 2003-04 시즌에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페자는 그가 떠나고 어시스트를 제외한 전부문에서 기록이 하락하며 흔들렸고, 그와 웨버 사이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다 결국 웨버의 이적, 본인의 이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루키 시즌부터 디박과 함께한 페자는 그를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보면 어린 페자가 멋진 플레이를 하면 디박이 일부러 세르비아어를 써서 큰 소리로 응원해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